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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계부가 매번 실패한 이유

0제이워니0 2024. 3. 13. 22:55

 

 

 

서점 특유의 분위기는 언제나 나를 기분좋게 만들어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서가에 모습을 드러내는 가계부는 더욱이 그랬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계부를 구입한다. 가계부를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부자의 길에 한 걸음 다가간 것 같은 기분이다. 작년에 사놓은 가계부도 뒷부분은 새건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지만 앞으로의 다짐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스스로 합리화를 시킨다. 이렇게 몇 해가 반복된다.

 

일주일에 한 번 쓰기

가계부를 생각하면 어린 시절 방학숙제로 쓰던 일기가 떠오른다. 매일써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꼭 개학이 임박해서야 밀린 일기를 쓰게 된다. 날씨가 어땠는지 들으면 지난 날들을 떠올리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기상청 131로 전화로 걸어보기도 했지만 이내 한계에 달하고 만다. 숙제는 해야 했기에 조금씩 지어내면서 일기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것을 제출한다.

나에게 가계부도 그런 대상이었다. 몇 번 미루기 시작하면 결국 나중에 몰아서 써야 하는 일이 생기는데 언제 뭘 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문자메시지와 카드사 앱의 승인전표를 보며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보기도 하지만 가계부를 적지 않는다고 혼내는 담임선생님이 계신 것도 아니기에 결국 가계부를 덮어버리고 만다.

가계부를 일기처럼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계부 작성의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매일 쓰는 것이 좋지만 일기를 쓰듯 하루도 빠짐없이 써야 한다는 강박감이 결국 가계부에 흥미를 잃게 만든다. 본인의 패턴에 따라 2~3일에 한 번씩 쓰거나 요일을 정해놓고 일주일에 한번 혹은 주말에 몰아서 써도 괜찮다, 요즘은 스마트폰 문자에 지출 내역 남기 때문에 자기 전 앱 가계부에 자동으로 기록된 항목들을 훓어보며 나중에 알아볼 수 있도록 간단히 메모만 해두면 오랜 시간 들이지 않고 일주일치 가계부를 쓸 수 있다. 가계부는 태생부터 일기와는 다르다. 하루도 빠짐없이 쓰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써야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작심 칠일도 괜찮아 : 주계부 쓰기

 

보통 가계부를 한 달 단위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월 단위 가계부가 부담스럽다면 주 단위로 끊어서 작성하는 것도 괜찮다. 

한 달 예산이 100만원이었다면 예산을 25만원씩 쪼개 주 단위로 설정하고 결산도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한다. 주간 예산 대비 주간 지출이 바로 나타나기 때문에 보완해야 할 점을 바로 반영할 수 있고 성과 또한 바로 나타난다는 장점도 있다. 중도 포기하지 않고 일주일 동안 완주에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성취만이 매우 커져 다음 주 가계부 작성에 힘에 되어준다.

내 경우 월 단위 가계부를 작성하기도 하지만 주간결산과 월간결산도 동시에 한다. 매주 결산을 하면 예산을 초과하지 않도록 밸런스를 맞추어주는 효과가 있다.

 

 

미래의 나에게 대파값을 알려주다

 

가계부를 쓰다가 지치는 이유중 하나가 쓸 내용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나같은 경우에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오면 구입한 상품을 하나씩 쪼개서 가계부에 기록했다. 꾸준히 쓰는 것이 가계부의 핵심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쓰다 보니 자꾸만 지치고 포기하고 싶어졌다. 하루만 가계부를 빼먹어도 옮겨 적는데 한참이 걸렸다. 그러다 보니 가계부의 칸이 너무 부족한 것이 늘 불만이었고 지출 내역을 기록할 수 있는 칸이 얼마나 넓고 많은지가 가계부를 고르는 첫 번째 조건이 되었다. 필요할 때 결제 내역을 찾아보면 될 것을 뭐하러 시간을 들여가며 가계부에 옮겨 적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결국 가계부 쓰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우리가 가계부를 작성하는 것은 우리 가계의 현금흐름, 즉 전체 지출액 중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인지 혹은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인지를 알기 위함이다. 식재료 각각의 가격이 중요했다면 앞서 카드고지서 가계부를 소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서의 내가 마트에 다녀와 열네 줄의 가계부를 적고 얻은 것은 몇 년 전 대파 한 단 가격이 1680원이었다는 사실 그뿐이었다. 그래도 대파의 가격을 남기고 싶다면 영수증으로 갈음하거나 따로 기록하자. 나의 경우 수기 가계부에는 간단하게 기록하고 세부내용은 엑셀 가계부나 가계부 앱 비고란에 적는다.

 

 

보고 싶지 않던 성적표

 

가계부를 쓰기 시작한 지가 어느덧 15년 가까이 되었다. 카드고지서 가계부부터 시작해서 앞서 소개했던 가계부를 종류별로 다 써보았지만 정작 내가 어디에 얼마를 쓰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학창시절 들춰 보기 싫은 성적표를 구석에 숨겨놓듯 '결산'이라는 과정을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혹 과소비를 하지는 않았을까, 저축을 얼마 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애써 회피했었다. 그 큰 수들과 마주한다는 것이 겁났다. 

어쩌면 내가 이미 우리 가계의 수입을 훨씬 넘어선 지출을 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산의 과정을 거치고 나야 비로소 문제점이 보이고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해결책도 세울수 있다. 예산과 결산의 과정이 없이는 아무리 하루도 빠지지 앟고 가계부를 적는다 한들 지출 기록장을 작성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된다.

가계부를 십수년 써왔지만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예산 세우기와 결산하기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100만원이라는 예산 안에서 생활하는 것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한 달 만에 생활비는 60% 이상 감소했다. 그다음 달에는 예산의 절반 이상을 남기게 되었다. 

가계부를 오래 써왔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면 들춰 보기 싫었던 성적표를 숨겨놓듯 애써 예산과 결산의 과정을 피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